[비즈 사건파일]⑫ 미얀마 반군 대장과 찍은 사진 믿고 투자했더니 ‘사기’… “외국 유력인사와 친분 내세우면 의심해야”

2022/09/23 10:39 1.9K
[비즈 사건파일]⑫ 미얀마 반군 대장과 찍은 사진 믿고 투자했더니 ‘사기’… “외국 유력인사와 친분 내세우면 의심해야”
사기나 횡령, 배임 같은 경제범죄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범죄는 서민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도 한다. 정부와 검경이 경제범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수법 탓에 피해 건수와 액수는 매년 늘고 있다. 조선비즈는 경제범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추가 피해를 막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편집자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전요환(황정민 분) 목사는 수리남 대통령과 결탁해 마약을 비롯한 각종 범죄 사업을 벌인다. 한국인 사업가인 강인구(하정우 분)는 전요환의 흉계에 빠졌다가 결국 복수에 성공한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100% 허구가 아닌 실화에 기반을 둔 데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수리남에서 활동한 한국인 마약상 조봉행은 드라마 속 전요환처럼 당시 수리남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조봉행은 외국 거물과의 친분을 내세워 동포인 한국인들에게 사기를 친 원조로 볼 수 있다.
최근에도 이런 황당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미얀마 반군의 장군’과 친분이 두터우니 함께 사업을 해보자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거액의 금액을 편취한 50대 남성이 붙잡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990년대도 아닌 인터넷 검색만 해도 외국 사정을 다 알 수 있는 2022년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7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3단독(김병훈 판사)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A(58)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편취금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A씨의 사기 행각은 범죄 스케일만 작을 뿐 드라마 ‘수리남’을 방불케 했다. A씨는 지난 2016년 11월 태국 딱주 매솟시에서 피해자 B씨를 만나 동업을 제안했다. A씨는 “‘나와 친한 미얀마 반군 대장이 미얀마 미야와디시에서 양곤시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운송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데 사업성이 좋다”며 “투자를 하면 대장에게 이야기해 동업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취지의 거짓말을 하며 B씨에게 총 5000만원을 받았다.
A씨는 2017년 11월에도 매솟시에서 다른 피해자 C씨를 만나 “‘태국에서 출발해 미얀마를 관통하는 고속도로가 개통 예정이니 국경지대에 있는 미얀마 미야와디시에서 주유소를 세우면 큰돈을 벌 수 있고, 한국 홈쇼핑에서 반품하는 제품을 싸게 구입해 태국에서 판매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1억8300만원 가량을 편취했다.
피해자들은 어쩌다 A씨에게 속은 걸까. 판결문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미얀마 반군 대장과 친분이 있다는 A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는 실제 태국 매솟에서 주식회사를 운영하며 건축사업을 했으며, 반군 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도 제출했다. 또한 C씨와 함께 반군 대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합작투자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B씨는 재판에서 “A씨가 ‘미얀마 미야와디에서 양곤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 사업을 할 수 있는데, 빨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고 말해 급하게 돈을 보냈다”며 “A씨가 1억원을 투자하면 버스 3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는 무리라고 생각해 5000만원만 송금했다. 이후 A씨가 말을 바꿔 ‘오래된 차량으로 운행할 수 없다’며 차량구입자금을 추가로 요구했다”고 진술했다.
C씨 또한 “A씨가 ‘‘한국 속초에 2만평, 태안반도에 450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고, 태국과 미얀마에서 성공한 재력가다. 사회간접자본투자를 하는 자금이 3000억원이나 있고, 미얀마 반군 대장과 호형호제 하는 사이’라며 먼저 주유소 사업을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A씨가 ‘대장이 원유를 무관세로 반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태국에서 출발해 미얀마를 관통하는 아시안 하이웨이(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한국에서 덤핑 재고 의류를 사서 태국으로 보내주면 태국, 미얀마 딜러들에게 도매로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재판에서 “B씨가 반군 대장과 관련한 고속버스 운송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B씨로부터 받은 돈은 대부분 고속버스 운송사업을 위해 사용했지만, B씨가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C씨와 관련해 A씨는 “2017년쯤 미얀마 미야와디시에 터미널, 면세점, 백화점 등 복합쇼핑몰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C씨가 사업 참여를 제안해 이를 알선해준 사실만 있다”며 “C씨가 의류아웃렛 매장 개설 및 위탁운영을 요청해 이를 수용했지만, C씨가 일방적으로 매장 폐쇄 결정을 내려 오히려 손해를 입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미얀마 반군 대장이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에 주유소 사업을 비롯한 여러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줄 능력이 있다는 객관적인 정황을 찾아볼 수 없다”며 “합작투자계약서와 관련해서도 합작법인 설립 일정, 정부 승인 방법, 사업의 내용, 투자수익 분배 방법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실효성이 있는 계약이라고 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한 “A씨가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금액 중 300만원은 카드대출금 변제 및 생활비 명목으로 사용하는 등, 피해자들과의 약속된 사업을 위해 돈을 지출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며 “A씨는 미얀마 반군 장군과의 친분을 이용해 주유소, 고속버스 사업 등과 관련한 이권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기망해 B씨와 C씨 외에도 피해자 1명에게 총 2억8000여만원을 편취해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과거에도 자신이 외국의 세력과 친분이 있다며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9년 인천지법 형사7단독은 사기 혐의로 기소된 80대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다. 그는 2016년 3월 인천에서 피해자에게 “베트남 퀸 대령을 잘 알고 지내니 퀸 대령을 통해 베트남 정부에 탐조등 수출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총 3382만원을 가로챘다.
지난해 7월에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던 한 피아니스트가 말레이시아 고위층과의 친분을 내세워 지인들에게 총 11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2020년 6월에는 “부인이 태국 왕실의 공주고, 나는 태국 군부 고위층과 친분이 있다”고 투자자들을 속여 3억원 상당을 받아 가로챈 50대가 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의 고위층과 친분을 자랑하며 투자를 권유하는 경우 의심해야 한다. 이들은 주로 합성 사진이나 조작된 통장 잔고를 보여주는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유혹한다”며 “투자자들은 주로 해당 국가의 현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범행 대상이 되기 쉽다. 외국의 경우 각종 사업과 관련된 법이 국내와는 다르기 때문에 더욱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