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류승룡 “천만 영화보다 두 아들과 뽀뽀하며 사는 삶이 성공”

2022/10/01 07:00 2170
“아내가 어떻게 볼지 가장 설레요. 이 영화는 아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예요. 흥행과는 무관하게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 인생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거예요.”
나는 류승룡의 말에 동의했다. 국내 최초 쥬크 박스 뮤지컬 ‘인생은 아름다워’가 시작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객석 여기저기서 눈물샘이 터졌다. 슬퍼서가 아니라 흥이 나서.
영화는 아내(염정아 분)가 폐암 선고를 받고 철없는 꼰대 남편(류승룡)과 그녀의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과거에 대한 후회 섞인 가정법이 없는 사람이 그러하듯,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류승룡과 염정아의 에너지에는 누수가 없었다.
자주 행복해 했고, 알맞게 감사를 표했으며, 마지막 장례 파티에서 갖춰 입은 흰 예복에선 기쁨의 광채가 흘러넘쳤다. 무엇보다 그들이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나 유열의 ‘이별이래’를 부르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동안, 우리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는 자각이 기분 좋았다.
류승룡을 만났다.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항해의 돛을 달아준 첫 번째 인터뷰이로 마주한 지 7년 만이었다.
2015년 여름을 생각하면, 그와 나는 커리어의 교착 지점에서 각자의 이유로 헤매고 있었다. 당시 류승룡은 영화 ‘손님’의 관객 반응이 애매해서 기자들 앞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음에도, 변함없이 매너가 좋았다. ‘보그’ 화보 촬영하듯 사진기자에게 무리한 앵글을 제시하던 내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최선을 다해 ‘오버액션’을 했다.
“2015년은 영화계도 언론계도 다 과도기를 겪는 중이었죠”라고 그가 회상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저는 로스팅도 안 된 생두였어요. ‘명량’의 성공 이후에 출연했던 4편의 영화들 ‘손님’ ‘도리화가’ ‘염력’ ' 7년의 밤’이 다 흥행이 저조했어요. 암흑기였죠. 폭풍 같은 과정들이 지나간 이후, 지금에서야 로스팅이 돼서 향이 좀 나는 정도랄까요.”
그간 ‘인터스텔라’ 시리즈를 보며, 자신이 돛이 아닌 닻이었던 것 같아 미안했다,며 겸손 섞인 엄살을 떨었다.
오늘 그와 나는 청담동에 있는 류승룡의 소속사 프레인의 1층 카페에 앉아 있다. 스틸과 플라스틱으로 설계된 미니멀한 공간에서 류승룡은 형광펜이 가득 칠해진 두툼한 성경책을 들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한옥 카페나 교외의 공방은 아니지만, 류승룡 곁에 있으면 구수한 흙과 나무 냄새가 풍긴다.
오랜만에 동류를 만난 듯 강한 파동마저 느껴졌다.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는군요.
“(함박 웃으며)네. 저는 이 책이 제일 달아요. 시편이 제일 달고 시원하죠. 뉴욕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트래킹하러 떠난 몽골 숙소에서도 헤드랜턴을 끼고 성경을 읽어요. 현장에서도 대사 없는 액션 신이면 성경을 읽다가 훅 들어가죠.”
스마트폰 속을 뒤적이더니 헤드랜턴을 켜고 독서하는 사진을 찾아 보여 주었다. 어둠 속에 비친 얼굴이 마치 금맥을 찾는 광부처럼 진지했다. 대본과 성경 사이에 놓인 인간의 오만과 참회, 사랑과 실패의 원석을 찾아 꼭꼭 씹어먹고 말겠다는 듯.
스크린 속의 류승룡은 힘이 세 보이기도 했고, 힘을 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힘센 류승룡은 주인공의 조력자나 대결자로 힘의 균형을 조절했으나(’활’의 박해일, ‘명량’의 최민식, ‘광해’의 이병헌 옆에서), 정작 ‘7번 방의 선물’이나 ‘극한직업’처럼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에서는 그 자신, 힘을 빼고 동료들에게 힘을 실어 스크린의 과도한 압력을 낮추곤 했다.
속이 빈 바위나 나긋나긋한 철봉처럼, 신기하게도 그가 들어가면 영화 속에 새로운 감정의 물성이 만들어졌다. 인간 정글의 냉혹함을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꿈에 젖은 남자를 연기할 땐, 갓 짜낸 기름처럼 신선한 ‘느끼함’이 뿜어져 나왔다.
“난 직접 짠 우유를 먹는 게 소한테 예의라고 봐요(’내 아내의 모든 것).”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극한직업’)”
‘명량’’광해’ ‘활’ ‘자산어보’처럼 기름기 쫙 빼고 수염의 각을 잡은 사극 속의 류승룡도 좋았지만, ‘극한직업’이나 ‘장르만 로맨스’처럼 수염 자국 덥수룩한 얼굴로 웃음의 박자를 만들어내며 갑을관계의 윤곽을 허물어뜨리는 생활인 류승룡은 더욱 사랑스러웠다.
고도의 기술과 그윽한 인성이 조화를 이루는 류승룡 표 코미디는 다양한 감정의 점이지대로 우리를 데려간다. 이를테면 이혼한 전처와 야릇한 무드에 빠져들 때의 뻔뻔함(‘장르만 로맨스’), 오래 산 아내와 여행지 모텔방을 잡을 때의 얄미운 뺀질거림 같은 것들(‘인생은 아름다워’).
-이번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보면서 여한 없이 울고 웃었어요. 극장 앞에서 염정아 씨가 ‘조조할인’ 노래를 부를 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마스크 안에 수증기가 가득 찼답니다. 느닷없이 노래하는 뮤지컬 장르에 닭살 돋는 저조차도 두 분의 노래와 춤에 붙잡혀 홀린 듯이 추억을 여행했어요.
“서툴고 어설프잖아요. 우리 인생도 노래도. 클래식 뮤지컬이면 거절했을 거예요. 다행히 열심히 노력해서 노래방에서 부르는 것 같은, 괜찮은 날 것이 나왔어요. 제가 맡은 진봉은 아내가 폐암에 걸린 걸 알고도 괴팍하고 고구마같이 굴어요. 죽음 앞두고 ‘정리할 거면 통장 비밀번호나 가르쳐주고 가라’는 둥.
처음엔 ‘에이, 난 저거보단 낫지’ 하던 관객들이 점점 ‘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부부를 따라 땅끝마을, 보길도를 거쳐 집으로 와요. ‘순간순간 기쁘게 살아내자’는 결심을 하고.”
-일상의 남루함 속에서도 생기를 길어 올리는 데 염정아만한 배우가 없는 듯합니다.
“정말 좋았어요. 성실하고 소탈하고. 염정아 씨가 제 아내랑 많이 닮았어요.”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류승룡은 ‘아내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상상만으로 무서웠다고 했다.
“염정아 씨가 잠든 딸아이의 마스크팩을 떼어주며 뽀뽀하잖아요.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가.” 그 마음이 너무나 절실했어요.”
-하지만 아내의 생일 선물을 손하트로 퉁치고, 모텔 방도 돈만 주고 내빼는… 이런 얄미운 남편은 제대로 염장을 지르지 말입니다(웃음).
“제가 나빠야 세연이 돋보이니까요. 항상 균형을 생각해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빌런이 없기 때문에, 저와 아이들이 좀 못되게 굴어야 나중에 공감이 커지거든요.
연기라는 게 되게 수학적이에요. 저는 체온 잴 때처럼 장면별로 열감을 상상해요. 갈등, 통쾌함...”
신파는 싫어하지만, 이 정도의 튜닝은 괜찮을 듯하여, 영화 속에서 악역을 자처해 데시벨을 높였다고 했다. 실제로 세꼬시의 잔뼈처럼 그가 던지는 까칠한 말맛과 얄미운 깐족거림이 슬픔의 짠맛을 잡아주었다.
‘색다른 맛’도 ‘아는 맛’으로, ‘아는 맛’도 ‘색다른 맛’으로. 류승룡은 계속 간을 맞추면서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천만 영화 기록을 4편이나 갖고 있는데도, 관객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가요?
“글쎄요. 그건 좀 달라요. 저는 갈수록 아내와 아이들에게 받는 칭찬이 더 좋아요(웃음). 스코어는 주연배우로서 책임을 느끼지만, 마음은 점점 초연해져요. 열심히 찍고 홍보하고, 그다음엔 어쩔 수 없어요.
예전엔 안되면 내 탓 같아서 자책했지만… 이젠 초조해하지 않아요. 잘 되든 안 되든 남 탓도 내 덕도 아니에요. 다 같이 노력해서 배를 띄웠을 뿐. 다만 이런 마음은 있어요. 요리사가 정성껏 만들어서 대접했을 때처럼 ‘입에는 맞으실지… 맛있게 드셨으면’.”
-어찌 됐든 한국 영화 흥행 탑4를 필모그래피로 갖고 있다는 건 놀라운 자산이지요.
“(손사래를 치며)운이 좋았어요. ‘광해’에선 이병헌의 덕을 봤고, ‘명량’에선 민식이 형(최민식)이 있었잖아요. ‘극한직업’은 독수리오형제 팀이, ‘7번 방의 선물’은 예승이랑 했으니까 가능했죠. 제가 무명으로 있다가 영화 ‘최종병기 활’로 청룡영화제 조연상을 받았잖아요. 변발에 외국어(만주어) 연기로 상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극한직업’도 행복하게 300만 정도만 넘었으면 했는데, 대박이 났어요. 세상일이 그런 거 같아요.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도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도 그분들이 상 받으려고 만든 건 아닌데, 전 세계가 주목했잖아요. 계급 갈등을 그렇게 풀어낼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한국이 커트라인도 높고 다양성도 대단해서 그런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거죠.”
스포트라이트를 온전히 즐기기보다, 계속 공을 상대에게 패스하며 이야기를 빌드업하는 건 류승룡의 습관이다.
-과거 ‘고지전’의 인민군 장교 역이 그랬듯이, 최근 출연 분량은 적었지만 ‘자산어보’의 정약용 역할이 볼수록 좋았어요. 흑백 화면 속에서 설경구, 변요한과 어우러져 한 점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묵향이 나는 그윽한 연기였어요.
“(반색하며)그때가 영화 ‘극한직업’ 무대인사를 다니던 즈음이었어요. 천만 흥행 이야기가 나오면서 들떠있을 때, 이준익 감독이 권해주신 배역이 ‘자산어보’의 정약용이었죠. 작은 배역이지만, 망설이지 않았어요. 이준익 감독은 현장의 어른이에요. 유토피아죠.
‘자산어보’에서 형제가 문경에서 여명이 올 때 운무 속에 유배지로 헤어지잖아요. 그때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울고 싶지? 울지마. 눌러.” 나이가 들수록 이어령 선생이 말씀하신 ‘눈물 한 방울’이 새록새록 이해가 됩니다.”
그 앞에는 내년까지 ‘닭강정’ ‘정가네 목장’ ‘비광’ ‘무빙’ 등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스크린을 오가는 작품들이 줄줄이 개봉 대기 중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이 기획되어 인생에 선물처럼 다가온다고 했다.
외형적 스펙터클로 요란 떨지 않아도, 언제부턴가 류승룡이 들어가면 스크린 안에 ‘미묘한 무중력의 공간’이 만들어지곤 했다. 나는 그 공간이 자연인 류승룡이 가져온 ‘자기 충족성의 기운’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1년간 간 촬영이 중단됐던 기간에도, 그는 책과 여행, 목공과 가죽 공예에 심취했다.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B형 기질 덕에 허리가 휘도록 8시간씩 나무와 가죽을 만졌다.
-쉼 없이 무언가에 몰입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만의 균형 맞추기죠. 젊을 때 저는 기인처럼 헤매고 다녔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일상을 섬세하게 정련하고 있어요. 계속하면 목수가 될 것 같아서, 만든 가구와 가방을 식구들에게 다 나눠주고 그만뒀습니다(웃음).”
-그렇게 매사 넘치는 힘은 어떻게 조절합니까?
“현장을 예를 들어보죠. 저는 이제 현장의 어른이에요.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야 할 나이죠. 야마다 레이지가 쓴 ‘어른의 의무’에 보면 어른은 불평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좋은 기분을 유지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계속 뭔가를 해야 해요. 어떨 때는 침묵하고 어떨 때는 실없는 농담을 해요. 어떨 때는 배고파도 참고, 어떨 때는 생각 없어도 ‘배고프다’고 하죠. 괴팍함과 따뜻함의 경계에서, 미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힘들어요. 카메라 안과 밖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나이 들수록 더듬이를 세워서 각자의 형편을, 전체의 형평을 계속 살피게 돼요.”
때로는 무심한 척 때로는 긴장한 척, ‘낄끼빠빠’도 눈치껏, 현장의 후배들을 위해 ‘어른 연기’를 하는데 더 많은 힘을 쓰게 되더라는 류승룡. “항상 적절한 게 힘들어요.”
-힘에 대한 순수한 욕구는 없습니까?
“(단호하게)없어요. 저는 악이든 힘이든 그걸 끄집어내서 확장하는 게 고통스러워요. 다만 ‘활’의 만주족 장수 쥬신타나 ‘명량’의 왜장 구루시마는 악역이라도 상대 입장에서는 용장이고 덕장이었기에 괜찮았어요.”
-그러니까 남을 지배하려는 에너지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군요?
“반장병은 있었어요. 반에서 약한 친구들 괴롭히는 아이들하고는 싸웠죠. 그래도 웬만하면 ‘더불어 평화’가 제 모토예요.”
-센 캐릭터를 맡아야 장악력이 커진다는 인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민은 되죠. 저는 아들이 둘이에요. 고2, 중2 청소년이죠. 아들 둘 키우면서 많이 배웠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자랑스러운 얼굴로)우리 아이들은 저한테 뽀뽀도 자주 해요. “전국의 중학생 중에 아빠랑 뽀뽀하는 애는 나밖에 없을걸” 으스대면서요. 저는 천만 영화 네 편 한 것보다 커가는 아이들이랑 뽀뽀하며 사는 아빠가 성공이라고 느껴요.
아이들 어릴 땐 너무 센 악역이나 야한 역도 피하려고 했어요. 창, 활, 총 맞아 죽고, 교도소에서 목매달려 죽고… 아빠가 너무 맞고 죽으니까 애들이 현실 분간이 안 돼서 울더라고요. 좀 커서는 남자애들이다 보니 ‘표적’처럼 멋있는 거 더 하라고 성화예요. 하하.”
그렇게 장악해서 외로워지기보다, 섞이고 부비며 사는 행복을 선택한 ‘더불어 평화주의자’ 류승룡. 얼마 전엔 큰아들과 몽골 트래킹을, 작은아들과는 뉴욕영화제에 다녀왔다고 했다.
-청소년 자녀와 단둘이 여행하고 뽀뽀하는 아빠라니, 그 자체가 초자연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군요!
“몽골 여행은 35명 여행팀 속에 섞여서 같이 갔어요. 혼자 길을 걷다가도 레코드판이 튀듯 아들과 걸었던 순간이 생각나요. 둘이 손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정성껏 걸었던 순간들이.”
류강, 류건. 두 아이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만으로 입에서 눈까지 동심원처럼 미소가 번졌다. 딸 같은 중2 아들과는 뉴욕 거리의 쓰레기통 앞에서 사진만 찍어도 신이 나더라고. 류승룡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아름다움은 어쩌면 ‘더불어 화평’과 동의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뭐 했어? 그랬어? 저랬어? 좋았겠네” 집사람과 도란도란 얘기하는 매일의 저녁도 저는 좋아요. 평범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말끝마다 설렌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아내가 첫사랑을 찾고 싶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당황하며)어… 굳이 찾고 싶을까요? 저도 아는 사람인데요. 하하. 실은 지난여름에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랑 둘이서 청송 여행을 갔어요. 애들 수련회 간 틈을 타서. (두 손을 맞잡고)너무 좋았죠. 저는 이번 영화도 아내가 어떻게 볼지가 가장 기대돼요. 아내에게 좋은 선물을 주는 같아서 내내 마음이 부풀어요.”
10대부터 50대까지 우리 기쁜 젊은 날들을 노래로 훑어 내려가다 보니, 애틋하지 않은 시간이 없더라고. 흥행 TOP4도 감사한 일이지만, 흥행과는 별개로 인생 대표작 중 하나가 될 거라고 했다.
“찍으면서 행복했고 끝나는 게 아쉬웠어요.”
-코미디에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것도 노력의 결과인가요?
“제 고향이 충청도예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다들 시치미 뚝 떼고 선수처럼 능청을 떨었어요(웃음). 저는 일상에서도 코미디를 좋아해요. 대학(서울예대)에선 장진 감독과 엇박자 코미디를 했고, ‘난타’로 5년 동안 해외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나라별로 다른 컨디션에 대응하는 법도 배웠죠.
똑같은 말도 어떻게 꺾을지, 0.5초 호흡을 당길지 늦출지가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었어요. 그 웃음의 공기가 세포에 학습이 됐어요. 젊은 날의 시간은 버릴 게 없이 자양분이 되더군요.”
-’극한직업’의 명대사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는 어떻게 나왔나요?
“그 연기는 리딩할 때부터 한 번에 감이 왔어요. 코미디는 너무 애를 써도 실패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염력’은 너무 애를 써서 실패했죠(웃음).”
-문득 궁금합니다. 류승룡다움이란 뭘까요?
“거미 똥구멍에서 줄을 빼듯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론 또 계획적이고 생산적인 사람이에요. 그 경계 지점에서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 돋보기와 태양의 초점이 딱 맞아서 타는 것처럼, 주파수를 맞추는 게 제 기질인 거죠.
휴식과 바쁨, 편안과 계획… 그런 게 다 연기에 투영이 돼요. 악역이지만 밉지 않게, 무겁지만 가볍게.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부터 그런 모습이 잘 표현이 됐어요. 멋있게 보이고 싶은데 다리가 풀리고, 완벽해 보이려고 하는데 구멍이 나 있는.”
그렇게 독특한 공감의 공간으로 안내하는 ‘더불어 화평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공들여 다듬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해맑게 웃었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20대의 저를 생각하면 천상 몽골 집시로 살았을 사람이에요. 지금의 저는 여행을 가도 지도부터 챙기고 트래킹을 해도 km를 기록해요. 젊은 시절에 발길 닿는 대로 방랑해봐서, 그 무모함을 상쇄하려고 그러는지도 모르죠.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일을 지속할 수가 없더라고요.. 연기는 첫째도 시간 엄수, 둘째도 시간 엄수, 셋째가 감정 세공이에요. 살도 빼고 말도 타고 무술도 하고 몸을 인수분해 해가면서 하루하루 정교하게 다듬어가요. 그런 극도의 건강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결정체가 나옵니다.
60대 70대가 되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하루하루 점이 모여 선이 되듯, 건강하다면 똑같이 살고 있겠죠. 먹고사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좀 더 주력하면서요.”
-변화무쌍한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불안에 쫓기지 않고 멘탈을 유지할 방법은 찾았는지요?
“등산을 해도, 저는 올라가서 정상을 밟는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려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게 끝이죠. A코스 B코스 여러 갈래길로 가더라도 목표는 정복이 아니라 종주인 거예요. 올라가는 길, 내려가는 길,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건 달라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마음의 예산을 넉넉히 세워두면, 변수를 만나도 당황을 덜 해요. 임기응변도 좀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저는 계획을 튼튼하게 세워요.”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수정하면 되죠. 반면 계획대로 잘되면 성취감이 커요. 되는대로 살다가 잘되면 ‘얻어걸린 운’이 되고, 계획을 세우고 살면 ‘제법 잘하고 있네’가 되는 거죠. 성경의 에스겔서 36장을 보면 ‘그럼에도 구하고 구하라. 그래야 내가 너의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구절이 있어요. 기도하고 기록해야 받은 은혜를 기억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항상 죽음을 생각해요. 메멘토모리가 인생의 모토였어요. 어릴 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왔는지가 참 궁금했어요. 아버지 정자에서 만들어져 저 무한한 밤하늘의 별들로 돌아가는 것인지…
끝을 생각해온 게 허무주의는 아니었어요.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라는 시편 39장을 읽으면서, 저는 감사하게도 내일의 계획을 세워요.”
-어쩌면 그런 균형잡기가 일과 인생의 전부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죠.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제가 좋아하는 대사가 있어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와 첫사랑 찾는 여행을 떠났잖아요. 그런데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서 배가 끊겼어요. 날도 너무 추웠어요. 그 장면에서 세연이(염정아)가 바다를 보면 그래요.
“여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보길도가 더 있네. 내 삶도 끝난 줄 알았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저는 그 대목이 너무 좋아요. 끝난 게 아니라, 저 너머가 더 있다는 생각… 그래서 웃으며 장례파티도 할 수 있는 거죠.”
문득 이준익 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문경에서 이준익 감독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였어요. 그때 저는 여러 영화에서 많은 캐릭터로 소비되느라 정신과 체력이 한계에 달한 순간이었죠. 힘들어하는 저를 보더니 그분이 그러셨어요.
“승룡아. 이 땅을 손으로 파 봐. 계속 파다 보면 손톱에서 피가 난다. 피가 나도 또 파봐. 계속 파지? 그럼 저 밑에 맑은 물이 나와.”
그때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요. 머리 위로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추워서 입김이 동그랗게 올라왔어요. 그리고 그 뒤로 정말 기다렸다는 듯 ‘활’ ' 내 아내의 모든 것’ ‘7번 방의 선물’이, 맑은 물이 터져 나왔어요.”
여기가 끝인 것 같아도 항상 그 너머가 있다는 것. 생존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신의 놀라운 계획과 나의 루틴의 하모니로 ‘존재함’을 느끼고 사는 것. 류승룡은 그렇게 시시각각 불가능에 가까운 미생(美生)의 그래프를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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