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할머니 이름 대봐라”... 이웃의 끈질긴 추궁, 유괴범 잡았다

3일 광주광역시의 한 어린이공원에서 9세 여아를 꾀어내 집으로 유인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아이를 지켜낸 건 이웃 주민 이모(42)씨였다. 범인의 수상한 거동을 의심해 500m가량 집요하게 따라간 끝에 범죄를 막아낼 수 있었다.

12살 아들과 6살 딸을 둔 이씨는 조선닷컴 통화에서 “애들 키우는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복범죄를 우려해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광주 북부경찰서와 이씨 증언에 따르면, 사건은 전날 오후 5시 15분쯤 북구 오치동의 오정어린이공원에서 벌어졌다. 큰아들(12)과 함께 공원에 나온 이씨는 공원 한구석에서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정자에 앉아 소주를 두 병째 비워내고 있던 40대 초반 남성 A씨였다.

빨간색 모자를 쓴 A씨는 술기운이 올라 불콰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A씨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가 근처에 있던 피해 아동 B(9)양에게 말을 걸다가 아이에게 소주병을 내밀며 술을 따르게 하는 모습을 보고선 의심은 더 커졌다. 이씨는 B양에게 다가가 “저 아저씨는 누구셔?”라고 물었다. 아이는 머뭇거리다 “삼촌이에요”라고 답했다. 이씨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광주에서 어린이 유괴 막은 시민 영상./cctv
광주에서 어린이 유괴 막은 시민 영상./cctv

A씨는 아이 손을 끌고 공원 밖으로 나섰다. 아이를 꾀어내는 데 사용된 인형도 손에 쥔 모습이었다. 이씨는 그 뒤를 따랐다. 인기척을 느낀 듯 A씨는 이따금씩 이씨를 돌아봤다. 그렇게 500m가량 ‘조용한 추격전’이 이어졌다. A씨는 곧 한 빌라 앞에 멈춰서더니 아이를 건물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순간 이씨가 달려들어 A씨를 멈춰 세운 뒤 말을 걸었다. “왜 여자애를 데리고 집으로 가세요?”

당황한 A씨는 횡설수설했다. 집에 있던 인형과 종이학이 담긴 유리병을 B양에게 선물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B양의 삼촌이라고 주장하며 되레 이씨에게 따지고 들기 시작했다. 이런 대거리가 10분쯤 이어졌다. 그때 이씨가 갑자기 물었다. “그럼 아이 할머니 이름을 대보세요.”

A씨는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보고 그의 범의를 확신한 이씨는 “삼촌인데, 아이 집 주소라도 말해봐라”며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그제야 A씨는 “잘못했다. 한 번만 봐 달라”면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미성년자 유인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씨는 B양과는 이웃사촌이다. 이씨는 “어떤 용기가 나서 범인을 쫓은 건 아니다. 저도 아이 둘 키우는 부모”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남들도 아마 그렇게 했을 것 같다”라고 했다. 경찰은 범인을 잡는 데 공을 세운 이씨에게 감사장과 포상금을 수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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