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52시간제 개편, MZ 의견 들어라”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근로시간 유연화 개편 방안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입법 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전했다. 현행 주 52시간 근무시간을 유연화해 최대 주 69시간까지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한 고용부 개편안에 대해 각계 우려가 제기되자 보완 검토를 지시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홍보 실패도 정책 실패”라고 했다.

 민주노총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과 관련 "한주 근로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면 사용자가 5일 연속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일을 시켜도 문제되지 않는다"며 "사용자와 부자들을 위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개악이며 '과로사 조장법'에 불과하다"며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2023.03.09./뉴시스
민주노총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과 관련 "한주 근로시간을 69시간으로 늘리면 사용자가 5일 연속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일을 시켜도 문제되지 않는다"며 "사용자와 부자들을 위해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하는 개악이며 '과로사 조장법'에 불과하다"며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2023.03.09./뉴시스

대통령실은 “법안 관련 근로자의 권익 강화라는 정책 취지 설명이 부족했다”며 “입법 예고 기간 중 근로자, 특히 MZ세대 의견을 듣고 여론조사 등을 실시해 법안 내용 중 보완할 것은 보완해 나가자는 취지”라고 했다.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고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편을 추진했지만, 그 취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주 52시간제’가 ‘주 69시간제’로 바뀌는 것으로 잘못 인식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물론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과로 조장 아니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입법 예고 기간인 4월 17일까지 근로자들과의 간담회뿐 아니라 대국민 여론조사 등을 추가로 실시하기로 했다. 여론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입법 보완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선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전면 재검토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고용부는 입법 예고 후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과반 의석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법 개정이 필요한 영역에 관한 한, 노동시간 연장이나 주 69시간제 도입 등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보완 검토를 지시한 것은 청년층이나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고용부가 지난 6일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핵심은 ‘일이 몰릴 때는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몰리지 않을 때는 주 4일제 근무나 장기 휴가 등으로 쉴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연장근로 단위를 ‘주’ 외에도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만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이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선택권·건강권·휴식권을 보장하는 근로자를 위한 개편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MZ세대 불만이 커지고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기존 노동단체뿐 아니라 MZ세대 노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지난 9일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며 개편안 반대 입장을 밝혔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4주 만에 30%대로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번 이슈가 2030에서 일시적이지 않고 장기화할 수 있다는 보고가 대통령실에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통령실은 MZ세대에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된 점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작년 말부터 노동 개혁을 추진하며 청년들의 화두인 ‘공정’의 가치를 재차 부각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MZ세대를 각종 개혁 과제 추진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장기적으로 내년 총선이 아니더라도 최근 정부의 징용 해법 발표 이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MZ세대 지지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에게 “청년들과 더 소통하고 잘 알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전 전화 통화를 갖고 같은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리는 이후 국무회의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간의 합의를 통해 근로시간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이번 제도 개편의 본질”이라며 제도 개편 취지에 관해 이해를 구했다. 한 총리는 또 “정부는 이 제도를 운용하면서 철저한 법 집행을 통해 시간 외 수당 미지급, 임금 체불, 건강권 보장 소홀과 같은 문제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이후 일각에선 근로시간 개편안이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은 ‘보완 입법’에 방점이 찍히는 분위기다. 고용부는 입장문을 내고 “제도 개편 방안의 내용과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정확하게 설명하겠다”고 했다. 특히 고용부는 현장에서 ‘정당한 보상 없이 연장근로만 늘어나는 것 아닌가’ 등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 “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해 일부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근로자가 시간 주권을 갖고 기업 문화를 혁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각계각층 의견 수렴을 토대로 다양한 보완 방안도 강구하겠다”며 “MZ 노조나 IT 업계 등 관계자들을 포괄적으로 만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날 “부족하다면 더 소통하고 연구해 올바른 제도가 입법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재검토가 아니라 폐기가 정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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