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23년 된 산불헬기, 부품 돌려막기로 버텨

지난 11일 발생한 경남 하동 산불이나 지난 8일부터 시작돼 사흘간 이어진 경남 합천 산불 때 진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장비 중 하나는 헬기였다. 도심 화재와 달리 산불은 도로로 소방차가 접근하기 어려워 헬기가 가장 효율적인 진화 수단이다. 헬기가 곳곳에서 뿌리는 대량의 물로 건조한 날씨 속에서도 산불이 크게 확산하는 걸 막았다.

산림청 헬기 현황
산림청 헬기 현황

하지만 산불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는 산림청 헬기 조종사들이나 이들을 지원하는 정비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산림청 ‘산림 헬기’ 48대 중 32대(67%)가 연식이 20년 넘은 ‘경년(經年) 항공기’라서다. 30년 이상 된 헬기도 11대나 된다.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경년 항공기는 20년 미만 일반기와 비교해 각종 안전 점검을 더 강화해야 하는 대상이다. 노후화에 따른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산림 헬기 48대의 평균 연식은 약 23년이고, 1992년 12월과 1993년 1월에 각각 제작돼 30년, 31년짜리도 있다. 2010년 이후 도입된 새 헬기는 단 6대에 불과하다.

보통 산불은 3~4월에 집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기간 비가 안 오다가도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는 등 기후변화 여파로 요즘은 일년 내내 산불 우려가 크다. 규모도 대형화·장기화하고 있다. 예컨대 작년 3월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의 경우 213시간 이어져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올해도 벌써 산불이 전국 247건 발생해 축구장 603개 크기인 산림 422.5ha(헥타르)를 태웠다. 반면 산불을 최전선에서 막아낼 헬기는 노후화 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다.

산림 헬기 가운데 주력이 노후화가 상대적으로 더 진행된 러시아제 헬기라는 게 요즘 산림청의 고민이다. 러시아 카모프사(社)에서 제작한 KA-32T로, 산림청 헬기 48대 중 29대로 중 비율이 가장 크다. 지난 11일~12일 경남 하동 산불 때도 투입된 산림 헬기 13대 중 8대가 이 기종이었다. 하지만 이 중 23대는 1992년 말부터 2003년 도입돼 20년이 넘은 노후 헬기다. 평균 연식이 25년에 달한다.

그러다보니 노후화로 정비를 자주 해야 하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부품을 구할 길이 막힌 게 문제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미국의 대러시아 금융 제재 여파로 러시아로부터 헬기 부품을 새로 구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점검을 통해 결함이나 이상을 발견해도 헬기를 고칠 수가 없는 처지다. 산림청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산림청은 이 여파로 ‘부품 돌려막기’로 버티기를 시작한 상태다. 헬기 1대를 가동하지 않는 대신, 그 헬기에서 멀쩡한 부품을 뜯어낸 뒤 다른 헬기 여러대의 낡은 부품을 교체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한다.

노후한 헬기는 진화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 헬기의 균형을 잡아주는 비행안정장치 등이 20년 이상 지난 구형 헬기엔 없어서다. 지역에서 산림청 헬기를 조종하는 A씨는 “20년 이상 지난 낡은 헬기는 모든 조작을 조종사가 직접 해야 해 진화 작업 때 훨씬 더 빨리 피로해지고 힘이 든다”고 했다. 노후화가 심해질수록 의무 점검 간격이 짧아지면서 정비사들 업무도 늘어나는데, 정비사 숫자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다. 비수도권의 소방항공대 소속 한 정비사는 “노후 헬기가 많아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2~3명이 함께 점검해야 할 중·대형 소방 헬기를 불가피하게 1명이서 점검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했다.

현재 산림청은 전체 헬기의 가동률을 8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48대 중 38대쯤이 즉시 현장에 투입 가능하고, 나머지는 정상적인 범위에서 정기 점검이나 수리 중인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주력 헬기의 부품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경우 가동률이 떨어지는 게 불가피할 것이란 반응이 많다.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을 때 대응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대안도 많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산림청 헬기 외에 소방청 헬기나 각 지자체가 민간에서 빌린 헬기도 진화에 동원할 수 있지만 대형 산불 때 효율이 낮다고 한다. 산림청 헬기는 한번에 뿌릴 수 있는 물의 양이 3000~8000L인데, 민간 헬기 대다수와 소방청 인명 구조 헬기는 2000L 이상의 물을 담아 나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주력 헬기인 러시아제 헬기의 가동률을 유지할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창욱 한국국방연구포럼 회장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존 부품을 빼 쓰는 돌려막기식 정비가 이뤄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비상시를 대비해 부품 수급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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