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 소년, 기부천사 꿈 이뤘다... “이웃 돕는 건 의미있는 사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원 주고 산 트레이닝복을 입고 11년째 하루 12시간 주 6일 피자를 만들고 배달하는 남상일씨. 그는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고, 사지 멀쩡할 때 열심히 벌어서 그만큼 남을 도와야 한다. 41년 길거리 인생에서 내가 배운 것”이라고 했다. /남강호 기자
인터넷 쇼핑몰에서 3만원 주고 산 트레이닝복을 입고 11년째 하루 12시간 주 6일 피자를 만들고 배달하는 남상일씨. 그는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고, 사지 멀쩡할 때 열심히 벌어서 그만큼 남을 도와야 한다. 41년 길거리 인생에서 내가 배운 것”이라고 했다. /남강호 기자

그가 자란 곳은 경기도 과천 선바위역 근처 판자촌이었다. 삼면이 허접한 나무판이어서 비만 오면 물이 샜다. 소년은 생계를 위해 중국집 배달을 뛰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종일 그릇을 돌리고 나면 땀에 젖은 손바닥에 얼마간 입에 풀칠할 쌀값이 주어졌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와 싸구려 슬리퍼뿐이었지만 그에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여유가 생기면 자신처럼 가진 것 없는 청년들에게 학비를 대주자는 마음이었다.

배달원으로 출발해 경기도 안산과 인천에서 피자헛 점주로 거듭난 남상일(41)씨는 지난해 12월 경기 사랑의열매에 5년간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이미 2500만원을 건넸다. 아내 정수진(40)씨는 2020년 8월 먼저 1억원을 기부해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부부가 나란히 아너 회원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2000년 안양 피자헛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만났다. 아내는 그때도 “돈 벌면 차곡차곡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자”고 했다. 남씨는 아르바이트를 멈추고 군대에 갔다 온 후 2004년 안양 피자헛에 정직원으로 취직해 2006년 부점장으로 승진했다. 그사이 아내는 철도 차량 회사에 입사했다. 2010년 전세 8000만원짜리 빌라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이듬해 그 돈을 고스란히 빼내 안산과 인천에 첫 피자 가게를 열었다.

아내는 명품이나 외제 차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독서를 좋아해 늘 책을 읽었다. 남씨도 거기에 물들었다. 하루 12시간 주 6일을 꼬박 일하며 피자를 배달했다. 연애 초기 약속대로 아동 구호 단체에 월 20만원씩 기부하고, 30평대 아파트도 장만했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싶던 어느 날 아내가 “드디어 1억을 모았다”며 기부를 선언했다. 생활비를 아껴 적금을 넣고 부지런히 펀드를 굴려 마련한 목돈이었다. 아내는 전액을 ‘사랑의열매’에 보냈다. 남씨도 그길로 안산 ‘사랑의 온도탑’에 당시 모으고 있던 동전 7007개 등 300여 만원을 익명 기부했다. 1억원 기부 약정도 했다.

“삶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에 있는 거지,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그는 “인생은 돌고 돌면 제자리. 맛난 음식, 근사한 여행지는 한순간이지만 내가 아끼고 모은 돈으로 누군가가 희망을 얻는다면 그거야말로 의미 있는 사치”라고 했다. “기부한 돈이 청년들한테 많이 쓰였으면 좋겠어요. 어딘가에 자기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줬으면 해요.”

코로나 대유행이 불어닥친 지난 3년, 가장 극심한 어려움에 빠진 직종이 바로 자영업이다. 전국 자영업자 70%가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줄었다. 그럼에도 아너 소사이어티 문을 두드리는 자영업자 회원은 줄지 않았다. 코로나 이전 3년간(2017~2019) 가입한 자영업 아너가 50명인데, 코로나 이후(2020~2022)에는 51명이다.

한때 완전히 망해 식구들이 잠든 밤 아파트 19층에서 죽을 각오를 했던 강성교(50) 드림푸드 대표는 짬뽕 전문점으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장애 아동 시설에서 봉사 활동과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기부를 하면서부터 사업이 더 잘되고 있다”며 “받기보다 주기가 열 배는 더 기쁘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10년쯤 더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열심히 벌어 좋은 곳에 많이 기부하겠다”고 했다.

울산에서 촌당숯불갈비를 운영하는 손응연(58) 대표는 20여 년 전부터 가게에서 나오는 소뼈로 곰국을 끓여 이웃과 나누거나 장애 아동 보호 시설에서 목욕 봉사를 하다가 2013년 아너가 됐다. 2010년부터 매년 울산대에 500만원씩 발전 기금을 내고,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을 위해 무료 급식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는 “조그마한 봉사인데도 하다 보니 만기로 적금 타는 것보다 더 큰 행운으로 내게 돌아오는구나 싶어 자꾸만 더 하게 된다”며 “기부하는 행복,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2017년 아들도 아너로 가입했고, 지난해에는 며느리까지 가세했다.

이정윤 전략모금본부장은 “코로나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 부담이 큰 상황인데도, 자영업에 종사하는 아너 비율(연 6%)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아너들의 선한 의지가 불황 속 희망이 된다”고 했다.

/안산=김경은 기자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문의 080-890-1212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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